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펠레 화산폭발 (문단 편집) === 생존자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elee_1902_3.jpg]] [[파일:external/farm5.staticflickr.com/4554858767_599e48464d_z.jpg]] 폭발 뒤 생 피에르 시. 남아 있던 것은 몇 개의 건물 벽뿐이었고, 럼 증류소와 럼 창고가 폭발하여 피해를 더했다. 특히 그리스도 승천일 예배가 막 시작되던 성당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es_ruines_de_la_cath%C3%A9drale.jpg?uselang=fr|성당은 폐허가 되어버렸고]]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5/5f/Le_bourdon_de_saint-Pierre%2C_Martinique.JPG/800px-Le_bourdon_de_saint-Pierre%2C_Martinique.JPG|성당에 달았던 종은 녹고 비틀어져 반으로 굽혀진 채로 발견되어 지금도 남아있다.]] 생피에르 시 중심에 있던 극장도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d/Ruines_du_th%C3%A9%C3%A2tre_de_Saint-Pierre_en_1902.png/800px-Ruines_du_th%C3%A9%C3%A2tre_de_Saint-Pierre_en_1902.png|폐허가 되었으며]]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d/db/Theatre_Saint_Pierre.jpg/800px-Theatre_Saint_Pierre.jpg|지금도 폐허인 상태로 남아있다.]] 100년도 더 지난 지금도 당시 많은 건물 및 난파선 잔해와 폐허는 그대로 남아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되었지만, 아직 지정되지 않았다. 인구 약 3만 명에 달했던 생피에르 시에서, 이미 피난한 지리학자들을 비롯한 수천 여명 외에, 도시 내에 잔류한 이들 중 생존자는 앞서 언급된 콩페르레앙드르와 실바리스, 도시 밖으로 떠밀려나가 표류하다 살아남은 10살 소녀 아비브라 다 이프릴르(Havivra Da Ifrile)까지 3명 뿐이었고, 그나마 로라이마 호 승무원 20명을 포함하여 휘말린 이들 중 23명만이 살아남았다. 그 외에 한 [[메이드]] 여성이 며칠 동안 살아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심한 화상을 입어 죽어가다가 며칠 뒤에 섬으로 온 수색팀에게 화산이 폭발했다는 증언만 겨우 남기고 곧바로 숨을 거두었다. 게다가 생 피에르 시 근처 마을에서 화산폭발 징조에 놀라 하필이면 생 피에르 시로 피난왔다가 싸그리 죽어나간 사람들도 1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구두수선공 콩페르레앙드르는 무너진 가게 지하실에서 온 가족이 다 죽은 가운데 홀로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실바리스는 무너진 교도소에서 역시 겨우 살아남아 구조되었다. 감방의 벽이 두껍고, 하나뿐인 창문이 화산 반대쪽으로 나 있긴 하지만 창문으로 열기가 들어와 피부에 깊은 화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 동안 다른 재소자들과 [[교도관]]들은 모조리 죽었으므로 정말 운이 좋았다. 사흘동안 그는 빗물과 오줌을 마셔가며 깔린 채로 겨우 버틸 수 있었고, 콩페르레앙드르도 같은 상황이지만 정신이 나가서 기절했다가 뭘 먹었는지 자신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프릴르는 사고가 나던 날 아침에 엄마 심부름으로 이모네 가게로 가던 길에 화산폭발을 목격하고 겨우 오빠가 타고 다니던 보트를 잡아 탈출했고 불타버린 보트 조각을 잡고 바다를 떠돌다 해안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서 프랑스 순양함 "Suchet"호 해병들에게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여기 생 피에르 시에 살던 사람에서 생존자는 없었고,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몰살당했다고 봐야 할 대참사였다. 당연하지만 지리학자들의 조언을 무시했던 루이 무테는 전술했듯 가족들과 자문단과 함께 나란히 끔살당했다. 뒤늦게나마 조치를 취하려 들긴 했지만, 선거 욕심 부리지 말고 보다 일찍 나서서 움직였으면 본인도 살고 이런 대참사로 이어지진 않았을 테니 철저하게 [[자업자득]]인 셈이다. [[파일:external/www.redicecreations.com/10731ludger.jpg]] 생존자인 뤼드게 실바리스.[* 이름이 루이 오귀스트 시파리스(Louis-Auguste Cyparis)라고 적힌 기록도 있다.] 등에는 이 당시 입은 깊은 화상이 남았다. 그에 대하여 기록된 것이나 증인들도 이 화산폭발로 모조리 죽고 기록이 박살나서 그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상세한 판단도 할 수 없었다. 실바리스의 주장에 따르면 전날 도시에서 싸움을 벌여 교도소에 임시로 갇혔던 터였다. 하지만 가난한 막노동자였던 실바리스가 싸움으로 누군가를 찔러서 부상을 입혀 복역 중이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본인의 주장대로라면 경범죄자에 불과한데 왜 창이 없는 지하 감방에 수감되었는지도 이상하지만, 자세한 사실은 알 수 없다. 그래서 일부 서적에선 실바리스가 중범죄를 저지른 '''사형수'''였기 때문에 가장 경비가 삼엄한 지하 감방에 있었다가 겨우 살아남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 역시 추측일 뿐이다. 병원에서 치료받고 나온 그는 사면되었으며, 그 뒤로 프랑스의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P. T. 바넘]] 서커스단에서 등에 깊게 남은 상처를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그 날의 참사를 회고하는 일로 벌어먹으며 1929년까지 살다가 [[파나마]]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만, 이 쇼에 대해 화산폭발 유일한 생존자라는 뻥 광고를 해댔고 역사상 처음으로 현대적인 흑인 단독 쇼를 한 것도 실바리스였다. 실바리스는 성격이 욱하는 면이 있어서 섬에서 누굴 죽였을 거라는 설도 많이 나왔다고 한다. 다른 생존자인 레앙드르는 상술하는 대로 르 모른 루주(Le Morne-Rouge)마을에서 살았지만, 4달도 안돼 3차 폭발에 휘말렸다. 여기서도 그는 살아남아서 2번이나 화산폭발에서 살아남아 유명세를 떨쳤지만 그야말로 2번이나 이런 일을 당한 그는 [[PTSD]] 때문인지 사람을 피하고, 화산폭발에 대해서는 괴롭다면서 이야기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어느 서커스단이 거액을 주고 그에게도 화산폭발에서 2번이나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쇼를 해달라 제의하자 [[구두]]로 그 사람 얼굴을 치며 욕을 퍼붓고 나가라고 화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도, 그는 섬에 계속 남아 [[포르드프랑스]]에서 살다가 나중에 생 피에르가 재건되자 거기로 이사가서 평범한 구두 수선 가게를 차려 살다가 1936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만 사진이 남아서 흑인 혼혈이라는 게 알려진 뤼드게 실바리스와 달리 레앙드르는 백인인지 흑인인지조차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오래 전 [[KBS1]]에서 자연재해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화산폭발에 대해 나올 때 이 사건도 나왔는데 거기선 이 2명만 언급하고 이프릴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적이 있다. 다 2명이 생몰연도와 이후 행적이 알려진 것과 달리 이프릴르에 대해서는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심지어, 그녀가 흑인 여성이라는 주장을 하는 해외 사이트도 있는데 자세한 것은 불명이다. 생몰연도도 자세히 없고, 프랑스어 사이트를 찾아봐도 구조되었다는 것만으로 행적이 끝이다. 화산폭발로 생존한 뤼드게 실바리스 이야기는 2019년 12월 29일에 방영된 [[MBC]] 프로그램인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방영되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